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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tion

여름의 폭풍 리뷰

1. 서론
2009년 4월 신작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계절에 안맞게 일찍 여름을 맞이한 제목인 '여름의 폭풍'은 스쿨럼블 시리즈로 유명한 코바야시 진의 신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여름의 폭풍은 타임트립(Time Trip;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코바야시 진의 스쿨럼블을 생각하면 제법 거리가 있는 특이한 소재이다. 특이한 제작사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샤프트'가 제작을 맡았고 연재가 얼마 되지 않은 원작의 한계때문에 내용 자체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시간여행물이라는 데에서 높은 점수를 줄 애니메이션이다.


2. 애니메이션의 재미요소

'여름의 폭풍'의 시간여행 알고리즘은 꽤 재미있다. 과거 시간여행물에서는 주인공이 과거로 넘어갔을 시에 과거의 자신이 존재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는데 '여름의 폭풍'에서는 두 존재가 근접할 시 과거로 넘어온 자신의 존재가 옅어지는 모습을 그린다. 더 나아가 과거의 일을 바꾸러 과거로 넘어가서 과거를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는 변화가 없는, 즉 원래 그러하던 것으로 여겨지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상당히 복잡한데 '과거불가침조건'이라는 조건 하나만 넣으면 복잡한 관계를 편하게 설명할 수 있다. '여름의 폭풍'에서는 탈평행세계를 도입했고 과거의 일을 바꾸어도 현재의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평행세계와 대비되는 '고유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현재의 일은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 과거의 일을 바꾸는 부분을 이미 포함한 현재이다. 시간여행으로 과거에 무슨 짓을 하든 현재에는 과거로 넘어가기 직전과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상한 우유'를 소재로 마지막화에서 풀어보긴 했는데 결국 타임 패러독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시간여행물의 가장 큰 특징인 시간여행 알고리즘은 그 작품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시간여행의 주된 목적지는 바로 세계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이다. 타임 트립을 할 수 있는 아라시야마 사요코는 세계 2차대전 당시의 피해자이며 유령이 되었고 현대에서 자신과 '통하게' 된 야사카 하지메와 함께 있어야지만 타임 트립을 할 수 있다. 사요코는 과거로 넘어가 폭격이 나기 전에 사람들을 구하고 하지메는 과거로 넘어가 과거의 일을 겪는다. 전쟁을 겪지 않은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넘어가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느끼는 감정의 묘사도 상당히 잘 되어있다. 이 외에도 시간여행으로 과거의 추억 이야기를 찾거나 현재의 곤란한 상황(?)을 재미있게 헤쳐나가는 등 '여름의 폭풍'만의 타임 트립을 잘 살려주는 에피소드들이 다소 포진되어있다.


3. 간단한 리뷰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댁으로 놀러온 하지메는 전통 찻집 '하코부네'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요코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런 사요코가 선글라스를 낀 괴한(통칭 선글라스)에게 위협을 받는걸 보고 하지메는 무턱대고 막아선다. 겨우 막아내 선글라스를 돌려보내고 하지메를 일으켜주려 사요코는 하지메와 손을 잡는 순간 '통한다'는 것을 느끼고 무작정 하지메를 끌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살았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 이리하여 사요코는 하지메와 함께 지내기로 결심한다. 사요코는 전쟁으로 희생된 여학생으로 전쟁중에 목숨을 잃을 사람들을 구해주고 싶다고 하고 하지메는 통크게 승낙하고 함께 위험한 전쟁터로 날아가 사람들을 구한다.



하지메가 처음 하코부네에 왔을때 그곳 손님이었던 카미카모 쥰과 사요코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이유로 타임 트립이 가능한 유령이 된 카야. 하지메는 쥰의 차림새를 보고 당연히 사내녀석이겠지 싶어서 편하게 대하지만 사실 쥰은 교복모델때문에 남자옷을 입었을 뿐인 여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하고만 통할 수 있는 카야와 함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쥰은 여자면서 주위 친구들을 보며 여자라는 생물을 혐오한다. 그리고 자신도 친구들처럼 여자가 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지금의 여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소극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카야의 용기를 북돋아준다. 



현재 하코부네의 주인으로 통칭 마스터 그리고 사요코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던 선글라스, 본명은 무라타 히데오다. 전직 사기꾼으로 알려져있는 마스터는 마구 시간여행을 떠나는 사요코나 카야를 보고도 놀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물론 처음에는 놀랬겠지만) '상한 우유'를 제시하며 상하기 전으로 가져가서 마시면 신선할거라는 의견도 낼 정도로 엉뚱한 사람이다. 그리고 히데오는 아라시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공습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아이의 아들이다. 히데오의 존재가 즉 '여름의 폭풍'의 시간여행 알고리즘의 증명인 셈이다. 누군가의 명을 받고 사요코를 데려오려고 했지만 모든 전말을 알게 된 뒤에 납치된 사요코를 구하기 위해 하지메와 함께 저택에 침입하는 등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애니메이션 초반부터 사요코를 데려오라고 히데오에게 시킨 장본인인 야마자키 카나코 후시미 야요이. 이들 역시 사요코와 카야와 같은 이유로 유령이 되었고 자신들의 존재가 희미해진다는걸 깨닫고 자신들과 같은 특징을 지닌 사요코를 납치해 힘을 취하려고 했다. 결국 카나코는 사요코와 만나서 힘을 빼앗아간다. 하지메는 사정을 말하고 히데오에게 협력을 구해 카나코와 야요이의 저택에 쳐들어간다. 잠입에 성공하고 하지메는 야요이와 대면한다. 야요이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는데 카나코가 들이닥치자 하지메는 몸을 피하다가 야요이와 접촉해 시간여행을 떠나버린다. 그곳에서 과거의 카나코가 위기에 처했을때 야요이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 카나코를 구해주고 그 덕에 과거의 카나코는 과거의 야요이에게 마음을 열고 좋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카나코는 히데오를 통해서 시간여행에 성공하며 다리가 나은 야요이를 만난다. 그 일덕분에 화해를 하고 사요코의 힘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통하는 자가 있는 사요코와 카야가 이들에게 힘을 나눠주며 현실세계에 머물며 통하는 자를 찾으라는 조언을 해준다.



4. 개인적인 견해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들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한 우유'의 타임 트립 진의여부.


사실 위에 할 말을 다 해놓긴 했는데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여름의 폭풍'은 특이한 시간여행 알고리즘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현재의 모습은 현재 혹은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가 과거의 일을 바꾼 일을 포함한 현재이다.' 라는게 되겠다. 이건 본인들은 자각하기 쉽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가 힘든 알고리즘이다. 작품 내에서는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과거로 넘어가 한 일이 현재에 영향을 끼쳤다는걸 몸으로 익히고 있다. 왜냐하면 생각을 하는 주체가 직접 과거로 이동했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여행을 행하였기에 과거의 시점에서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패러독스에 걸리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사요코와 하지메는 한 아이를 구하고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 그의 아들인 히데오가 사요코와 하지메의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히데오는 사요코와 하지메가 구하러 가기 전부터 이미 존재해 있었다. 그렇다면 사요코와 하지메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과거로 넘어가서 구해줬기 때문에 히데오가 태어난거구나.'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본다면 사요코와 하지메가 아이를 구하고 그 아이가 자라서 히데오를 낳았고 히데오는 사요코와 하지메가 아이를 구하기 전에 만난다. 라는 무한루프를 겪게 된다. '여름의 폭풍' 타임 패러독스를 마지막화에 '상한 우유'로 비유하며 방송을 마쳤다. 어떻게 보면 과거-현재-미래가 이미 정해져있는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 자체가 하나의 시나리오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여름의 폭풍'의 가장 큰 특징인 특유의 시간여행 알고리즘 뿐만 아니라 샤프트 특유의 연출도 남달랐다. 중간중간에 패러디가 많고 엔딩 후에는 특정 작품을 간접적으로 내뱉는 이해할 사람만 이해하는 개그도 첨가했다. 그리고 오프닝은 첫번째 가사를 첫번째 ~ 열세번째로 개사해 무려 13절이나 만들었다. 실제로 OP 발매할때 13절로 내놓았을까? 내놓은 시점에선 많아야 4화겠지만.. 사실 시간여행 알고리즘에 대한 생각같은건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나서야 생각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은 현재와 어두운 과거로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편하게 즐길 수 있고 게다가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는 재미까지 안겨주는 개념찬 애니메이션이다.


5. 그 외 

3일만에 썼어 기적이다. 뭐 뒤로 갈수록 날림으로 쓰긴 했지만.